한편으로는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그리고는 훌쩍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다시 한 번 무명인이 되고 싶어진다. 이름이 없어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 또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나의 존재. 나는 이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누구의 아들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낯선 이방인. 내가 가져온 지난 이야기가 여전히 내 주위에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 가는 나의 선택이 되며, 또한 그마저도 현지인이 아니라는 사실 속에 일종의 신비감을 갖게 된다. 일종의 고양감이 주어진다랄까.
지금의 나는 평생을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모았고 그래서 일에 동기 부여가 잘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과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있는데, 그래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아, 나는 그런 면에서 여전히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일까. 조르바처럼 자유롭고 싶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일만하다가, 공부만 하다가, 준비만 하다가 뒤질거 같다. 인생은 짧고, 즐길 것은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조금 쉬어가야지 한다.
사람들에게 뭐라 말하며 좋으려나. 그냥 사업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조금 다른 거에요. 지금이랑은. 이렇게 하면 또 또 한눈 판다 생각하겠지? 그럼 뭐 어떠랴. 적당히 솔직해지고 많이 자유로워지고 싶다. 타인의 평가를 신경쓰지 않고 싶다. 나의 이름과 정체성은 역시 한국에서는 안 되는 건가. 답답한 일요일 아침이다.
쾌락주의 (0) | 2023.01.01 |
---|---|
환멸 (0) | 2022.12.30 |
트레이딩, 사랑, 아웃풋 (0) | 2022.12.14 |
친절해진다는 것 (0) | 2022.09.21 |
새로운 사람들과 책 (0) | 2022.09.19 |